로고

대구지회
로그인 회원가입
  • 교육자료
  • 교육칼럼
  • 교육자료

    교육칼럼

    유년부 <제1원리가 되는 죽음의 설명> 3-4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DCEF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752회   작성일Date 10-03-18 13:06

    본문

    유년부 
    로버트 초운2세

    어린이들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그 분 주위를 감싸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하라.

    2학년인 사라는 다른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똑똑했으며, 그녀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기쁘게 했다. 사라는 행복했고 안전했다. 어느 날 그녀의 아빠가 병원으로 급히 가셨고 곧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사라의 세계는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 사라는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비록 그녀의 엄마가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로한다 해도 30세가 된 사라는 아직도 오늘날 그녀의 아빠에 대한 슬픔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학급이나 모임에서 어린이가 부모를 잃었거나 또는 형제자매가 죽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어린이가 사랑했던 한 사람의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가는 데 도울 수 있도록 하는 몇 가지 지침이 있다.

    어린이로 죽음이 삶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라.
    우리 모두가 태어나는 것과 똑같이 각자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린이로 확신하게 해준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는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러 이 땅에 오셔서 그를 믿는 사람들이 언젠가 그 분과 함께 하늘나라에 간다. 기독교인을 위한 죽음은 이 세상에 있는 생명으로 부터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사랑했던 죽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주님과 어린이 자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라. 만일 죽음에 대한 주제가 어린이의 삶 속에서 인간의 죽음이 통과하는 것으로 미리 알게 했다면, 특별히 어린이에게 죽음에 대한 이해는 쉬운 것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유년부 연령의 어린이들은 죽음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매체를 통해서 폭력 행위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죽음이 폭력을 통해서만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몇몇의 어린이들만이 죽음이 인간이 늙었을 때 평화스럽게 조용히 찾아온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 모두가 폭력의 희생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내 아내의 75세 되신 어머니가 수면 중에 돌아가셨을 때, 어떤 학생들은 누가 그녀를 총으로 쏘았느냐고 질문했다. 어린이들은 어떤 죽음은 폭력에 의해 예상치 못한 고통 있는 죽음이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평화롭고 예상되었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어린이로 우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우라
    죽은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하라. 어린이로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관계나 재미있었던 시간을 생각나게 해주라. 어린이의 눈물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리고 도움 되는 것으로 확신하도록 해주라. 단지 아기가 아닌 어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들이 그 죽음을 빨리 “극복할 수 있다’라고 예상하지 말라. : 아주 가까운 가족을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행위의 과정은 1년 정도가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만일 한쪽의 부모나 위의 형제나 자매가 그들의 슬픔으로 부터 어린이를 보호해 준다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질 어린이 자신의 발달을 늦출 수도 있다. 어린이가 죽었던 사람의 사량 속에서 공유했던 것을 가지는 데 충분한 연령의 어린이는 사람을 잃은 것을 공유하기에 충분한 나이다. 히스테리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라. 만일 감정적인 깊은 상처의 시간이 되게 하는 장례식이 우려가 된다면. 그런 경우 어린이가 집에 머무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만일 장례식이 ‘잃음’을 승인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선하고 믿음 있는 종이 그 죽은 분의 보상을 방출해 왔던 기쁨으로써 완화할 수 있으므로 어린이를 장례에 참여토록 한다.

    어린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도우라
    어린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말라. “아빠는 먼 곳에 출장 가셨다.” “할아버지는 아주 먼 친척집에 계시단다.” 또는 “너의 언니는 아직도 대학에 있단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집에 올 수 없단다.”
    어린이는 어른들과 똑같이 죽음에 대한 최후의 결말을 승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적당한 연령에 있는 어휘나 개념들 속에 있는 요인들이나 그리고 개개 어린이의 공감하는 이해를 나타내라.

    어린이의 느낌이 정상이라는 방법을 그에게 말함으로써 도우라
    * 슬픔의 과정의 이혜는 여러분이 슬퍼하는 어린이나 그들의 가족들을 상담할 때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정상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주된 정신적인 충격 이후에 슬픔의 단계를 따라 겪게 된다. 이러한 단계들과 적당히 도와야 하는 것을 깨달으라.
    * 죽음에 대한 보도를 들을 때, 어린이는 일어났던 일을 부정할 수도 있고 또는 그 시간에 그 전체 화제를 피할 수도 있다. “난 그것을 믿을 수 없어요. 아빠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그가 집에 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거예요. 아빠는 오실 거예요. 오실 거예요.”
    * 죽음에 대한 부정은 서서히 실제 속으로 어린이가 접근되도록 돕는 안전한 기계장치이다.
    * 어린이는 죽음 이후의 굉장한 두려움과 걱정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엄마가 여기에 없는데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해요? 누가 날 돌봐주지요?” 어린이는 재확신과 안전을 필요로 한다.
    * 어린이는 또한 어떤 형체 속에서 또는 상징적인 방법 속에서 죽은 사람을 찾기를 계속할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죽은 사람을 찾기 위한 어린이를 위한 일반적인 방법은 가족사진의 앨범을 보는 것이다. 사진에 대한 대화나 사진을 보는 것, 그리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죽음을 실제화 하는 하나의 단계가 될 수 있다.
    * 어린이는 온당치 않은 화를 표현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까지도 가질 수 있다 “전 나의 아빠를 데려가신 하나님이 미워요.” 어린이의 격렬함에 상관치 말고 어린이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라. 이러한 것들은 표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감정들이다.
    * 어린이는 죄를 느낄 수도 있다. “제가 좀 더 할머니를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지금 난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 수 없어요. 아마도 그 날 할머니를 내가 도왔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텐데…” 어린이가 죽은 사람과 함께했던 관계에 대한 사랑의 변에 초점을 맞춘다.
    * 어린이는 다음과 같은 상실감을 인식할지도 모른다. 어린이는 외로움이나 기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 “전 울 것 같아요. 작은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얼마 후에, 삶은 확실한 일상의 업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 상실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지만, 점차 괜찮아 진다. 좋은 추억은 어린이가 눈물 없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 가족의 휴일이나 생일날 혹은 다른 날에 그 상실감이 기억되어질 때 있을 어떤 슬픔에 대해서 예상하라.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는 것은 어린이나 그의 가족들에게 실제의 축복 될 수 있다. 유년부 교사로서 우리의 임무는 가르치는 사실 이상이 되어야만 하고. 그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