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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부 교육 <죽음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로버트 죠셉초운, 오늘의 어린이 19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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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767회   작성일Date 08-03-0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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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학년 학생중 피터하는 학생이 일주일 동안 결석을 한 후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얼굴을 걸쭉하고 슬퍼 보였다. "피터를 보니 기쁘구나!" 하고 나는 말했다. "다시 온것을 환영한다" 그는 목이 메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전 더이상 할머니를 보러가지 못할 거예요."하고 대답했다.
    여러분이 가르칠 때, 이와같은 경험을 가진 어린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슬픈 얼굴로 들어와서는 걱정과 불신과 심지어는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 미묘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겠는가? 여러분은 뭐라고 말하겠는가? 어린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는 세가지 단계가 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절기들을 한 예로 사용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에 때를 두셨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준다. 여름 꽃들은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시든다. 겨울동안 하나님은 봄이 다시 한번 올 때 새생명을 꽃피울 수 있도록 미리 뿌리와 씨앗들을 보호하신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모든 것은 그 시작과 끝이 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시들어 죽는 꽃들은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씨앗을 남긴다. 새 생명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온다. 하나님이 그것을 그렇게 계획하셨다.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때, 그는 그들의 많은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여러분의 유년부 어린이들 처럼 그들 역시 죽음에 관한 질문을 갖고 있었다. 죽으면 무슨일이 생길까? 육신은 어디로 갈까? 부활은 무엇과 같을까? 고전15:35-38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씨앗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씨앗이 죽어야만 새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토마토 씨앗을 보고 속이 가득차고 물기가 있는 열매와 비교하면서 시작과 끝의 과정을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셨다. 그러나 죽음과 그 무덤이 그분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분의 부활은 죽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나 효력이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해 준다.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신 주님이시다! 이것이 어른들과 어린이들 모두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우리는 죽음에서 일어나 새생명을 얻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이다. 죽은자는 이생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더 좋은 삶을 살게 된다. 상처입었거나 병이들었을지도 모를 육신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더욱 새로워지고 더욱 좋아진 육신은 하나님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각각 돌보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다. 유년부 어린이들은 하나님이 어린이들이 사랑했던 사람이나 그 자신을 돌보아 주시리라 믿을 수 있게 하는 재확신이 필요하다!

    죽음은 실제적이며 마지막이다
    유년부 어린이들은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어린이들에게 죽음과의 첫 경험은 애완동물의 죽음일 것이다. 그들은 어항속에서 금붕어가 떠돌아 다니는 것을 몇시간 동안 지켜본 후에야 금붕어에게 더 이상 먹이를 주는 것이 소용없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자극의 정도가 쥐의 무리들을 깨우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날 그것이 친구나 친척에게 일어난다.
    이때, 간단한 위로의 용어를 사용하면 아주 도움이 될 수 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하나님과 함께 계셔”라는 말은 죽음이 실제적이며 마지막이라는 것을 어린이에게 말해준다.
    “잠자는” 이나 “가버리다”와 같은 용어의 사용은 죽음에 관해 진실되지 못한 것을 가르친다. 인생에서 나중에 잊어버려야만 하는 것들은 결코 가르치지 말라. “잠자다”의 완곡어법은 자연적인 원인 때문에 죽는 경우에 어린이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는 있지만, 개념은 어린이가 언젠가 끔찍한 상처를 가져오는 난폭한 죽음에 직면하게 될 때 해답이 없이 어린이에게 남겨지게 된다. “강아지의 하늘”은 귀여운 개념이 될 수는 있지만 사람과 동물간의 영적차이에 관한 잘못된 생각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유동적인 사회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가족은 아주 드물다. 자연적인 의미에서 어린이들은 늙는 것과 죽음에 거의 노출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목격하는 대부분의 죽음은 영화나 TV에서 보여지는 격한 것들이다. 죽음이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나기 전에 그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육신의 죽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영생의 사실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죽음이 올때, 그 어린이의 슬픔을 함께 나눈다. 그를 위로해준다. 그러나 그가 상실한 것을 부정하지 말라. 남겨진 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불행을 나누어 주고자 할 때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가족의 친구나 친척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만일 어린이가 사랑을 나누었다면 그에게 잃어버렸다는 것을 나눌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이런 인생의 중요한 사실에 대한 진리를 어린이에게 이야기하는 주일학교 교사는 그 어린이의 부모와 함께 이따금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교사들은 심지어 그 주제를 토의하게 될 수업시간에 부모들을 초청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교사와 부모에게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받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준비된 죽음의 가장 좋은 예는 우리 주일학교 1학년의 죽음이었다. 그 어린 소녀는 방광으로 인한 고통을 당했으며 어느시기엔가 자기가 어른이 될 때 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앙이 있는 그녀의 부모는 자기 딸 뿐만 아니라 자기딸의 학우들에게도 준비를 시키지 않았다. 그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그 어린아이에게 어떤일이 일어날 것이지 그리고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설명했다. 그 어린소녀는 하늘나라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삶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그 소녀의 부모와 친구들은 자기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장례 예배에 참석했다. 커다란 슬픔이 있었지만 병적인 흥분은 없었다.
    만일 죽음이 여러분의 학생중 어느 한 사람이나 그의 가족에게 갑자기 일어난다면 어쩌겠는가? 지금이 바로 준비할 때이다. 그런 문제를 욕하거나 그 급박함을 강조하지 말고 애완동물의 죽음이나 계절이 지나가는 것처럼 가르칠 수 있는 순간을 이용하라.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고 간간한 용어를 사용하여 대답해 준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며 결코 닳아지지 않는 육신을 입고 훌륭한 하나님의 집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로 어린이들을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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